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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식

[과학동화5월호] ‘멍~ 때리는 동물?’ 파충류는 억울해

seoulfric 2015. 4. 30. 14:35

<편집자 주>
애증의 동물 파충류. 공룡 등 남녀노소를 불문한 흥미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뱀처럼 혐오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생물학자의 글을 통해 파충류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보자.

 

과학동아(일러스트 정재환)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정재환) 제공

 

오래 전부터 파충류는 인간과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신화나 전설 속의 파충류는 대부분 혐오스럽거나 위험한 동물이었다. 아마 이들의 독특한 외모와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원전부터 시작된 파충류에 대한 푸대접은 과학이 발달한 20세기까지도 이어졌다. 1950~1960년대에, 과학자들은 동물이 얼마나 영리한지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실험동물에게 모두 같은 인지검사를 받게 했다. 하지만 이 검사들은 파충류에게는 불리했다. 모두 포유류에게 적합한 검사였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노출되면 파충류는 그저 가만히 ‘멍 때리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고 검사 결과는 늘 바닥이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파충류가 아둔하고 게으른 동물이라고 계속 인식하게 만들었다.

 

단단하고 기하학적 모양을 지닌 등껍질, 느린 동작,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딱딱한 피부. 파충류는 포유류에게 낯설다. 혹시 이들에 대한 폄하는 우리의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 istockphoto 제공
단단하고 기하학적 모양을 지닌 등껍질, 느린 동작,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딱딱한 피부. 파충류는 포유류에게 낯설다. 혹시 이들에 대한 폄하는 우리의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 istockphoto 제공

 

● 참 똑똑하기도 하지!


하지만 파충류에 대한 이런 인식은 21세기에 들어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50년 만에 파충류에 적합한 새 인지 능력 검사법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파충류의 지능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테네시대의 고든 버가트 교수팀은 십자가를 두 개 겹친 모양으로 8방향의 길이 난 미로를 이용해 거북의 공간기억능력을 검사해 봤다. 검사를 위해 버가트 교수 연구실의 마스코트였던 ‘모세(Moses)’라는 애칭의 젊은 암컷 붉은다리거북이 나섰다.

 

연구팀은 모세가 미로 내에 각각 떨어져 설치된 8개의 먹이를 길을 잃지 않고 전부 먹을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모세는 자신이 지나갔던 길을 정확하게 기억해가면서 8개의 먹이를 모두 먹어 치웠다. 이는 같은 길을 실수로 몇 번씩이나 오가며 먹는 쥐보다도 뛰어난 결과였다. 파충류의 기억력은 결코 낮은 게 아니었다!


문제해결능력은 어떨까. 미국 듀크대 마뉴엘 릴 교수는 푸에르토리코 아놀도마뱀을 이용해 실험해 봤다. 아놀도마뱀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수상 도마뱀류로, 평소 밑으로 지나가는 곤충을 위에서 덮쳐서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릴 교수는 아놀도마뱀이 이런 사냥 습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이 됐을 때 과연 어떤 묘수를 발휘해 사냥을 할지 알고 싶었다. 이를 위해 뚜껑이 덮인 그릇 속에 먹이인 곤충을 넣고 아놀도마뱀 앞에 둬봤다. 위에서 먹잇감을 덮치는 아놀도마뱀의 사냥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실험에 참가한 도마뱀 중 3분의 2가 새로운 사냥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6마리 중 4마리가 주둥이를 이용해 뚜껑을 여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도 각자가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먹었다. 과학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 도마뱀도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뚜껑 밑에 숨어있는 먹이(곤충)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푸에르토리코 아놀도마뱀. 실험에 참가한 6마리 중 4마리는 주둥이를 이용해 뚜껑을 여는 방법을 터득했다. - 영국왕립학회보 제공
뚜껑 밑에 숨어있는 먹이(곤충)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푸에르토리코 아놀도마뱀. 실험에 참가한 6마리 중 4마리는 주둥이를 이용해 뚜껑을 여는 방법을 터득했다. - 영국왕립학회보 제공

 

● 냉혈동물? 천만의 말씀!


파충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냉혈동물’이다. 간혹 동물원의 열대우림관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육사가 비단구렁이를 만지게 해줬는데, 몸이 엄청 차갑더라고. 역시 파충류는 냉혈동물이야!”


정말 파충류는 냉혈동물일까. 먼저 ‘냉혈동물’의 개념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냉혈동물’이란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냉혈성(cold-blooded)은 체온이 외부환경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체온 체계를 의미한다. 외부의 기온이 높은 곳에서는 ‘냉혈동물’의 체온 또한 올라가기 때문에 ‘차가운 피’를 뜻하는 ‘냉혈(冷血)’이란 단어는 명백한 오류다. 정확한 표현은 ‘변온성’으로, 이와 반대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체온 체계를 ‘항온성’이라 한다(냉혈성의 반대인 ‘온혈성’ 역시 잘못된 표현인 것이다).


게다가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은 각각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내부의 열원을 통해 체온조절을 하는 성질을 ‘내온성’이라고 하고, 외부의 열원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는 성질을 ‘외온성’이라고 한다.

 

즉 음식을 소화시켜 열에너지를 생산하고 체온을 약 37℃로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우리 인간은 ‘내온성 항온동물’이다. 반면 같은 포유류지만 동면을 하는 미국 흑곰은 ‘내온성 변온동물’이다(겨울잠을 잘 때 체온이 변한다).


파충류는 인간과 정반대인 ‘외온성 변온동물’이다. 체온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아침에 체온이 떨어지면 태양을 바라보며 일광욕을 한다. 반대로 오후에 체온이 너무 올라가면 시원한 그늘로 들어가 체온을 떨어트린다. 이처럼 이들 파충류들은 주위의 환경변화에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게으름피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게으르고 아둔한 동물이 절대 아니다.


비록 원시적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체온조절 시스템은 효율이 꽤 높다. 예를 들어 삶의 대부분을 일광욕을 하는 데 보내는 갈라파고스 바다이구아나는 체온을 40℃ 이상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외부 에너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에너지 사용량이 낮다는 장점도 있다(즉 대사량이 낮다).

 

이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에너지는 햇빛, 또는 태양에 의해 따스하게 덥혀진 암석으로부터 온다. 덕분에 내온성 동물보다 에너지를 최대 30배나 절약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이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식사량을 비교해 보면 쉽다. 내온성 동물 중 가장 큰 육상 포식동물인 사자를 보자. 하루에 고기 9kg, 그러니까 안심스테이크 45인분 정도를 먹어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양의 고기를 바다악어에게 주면 무려 90일 동안 파티를 벌일 수 있다. 삼시세끼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보니, 외온성 변온동물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가 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개나 고양이를 만나기는 힘들어도 뱀이나 도마뱀을 만날 수 있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파충류의 분류(파충류는 분비기관이 없는 피부를 지니고, 뒤통수에 한 쌍의 큰 구멍이 발달한 동물군을 의미한다.) - 과학동아 제공
파충류의 분류(파충류는 분비기관이 없는 피부를 지니고, 뒤통수에 한 쌍의 큰 구멍이 발달한 동물군을 의미한다.) -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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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충류는 누구인가?


파충류를 가리키는 ‘Reptilia’라는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은 18세기 스웨덴의 저명한 식물학자 칼 린네였다. 그는 도마뱀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는 ‘슬금슬금 기어가는 것’이란 뜻의 라틴어 ‘repere’를 따서 이 표현을 만들었다. 그는 파충류가 양서류의 일종인줄 알았는데, 이것은 당시 스웨덴에는 린네가 연구할 만한 파충류 표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파충류와 양서류가 서로 전혀 다른 동물임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약 60년 후인 19세기 초였다. 프랑스의 동물학자 피어 앙드레 라트레일레가 척추동물문을 어강, 양서강, 파충강, 조강, 포유강의 5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파충류(강)는 비늘로 덮여있고, 육상에서 알을 낳는 변온동물로 정의됐다. 하지만 이런 린네식 분류 법은 기본적인 신체 특징만을 이용해 생물을 분류할 뿐, 각 생물 사이의 연관성, 특히 진화적 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려주지 못했다.


1950년, 독일의 생물학자 윌리 헤닉(Willi Hennig)은 린네식 분류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분기분류법의 사용을 제안했다. 공통된 선조를 가지는 그룹을 묶어 마치 나무의 뿌리를 그리는 것처럼 가계도를 그리는 분류법이다.

 

생물의 분류방법이 분기분류법으로 바뀌면서 파충류의 정의 또한 바뀌었다. 현재 파충류는 분비기관이 없는 피부, 그리고 뒤통수에 발달한 한 쌍의 큰 구멍을 지닌 동물로 정의한다.


분비기관(땀샘)이 없기 때문에 파충류는 땀을 흘리지 못한다. 체내의 노폐물을 원활하게 밖으로 배출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덥고 건조한 환경에서 몸 속의 수분이 증발하지 않게 하는 데에는 유리하다. 뒤통수에 발달한 구멍은 파충류가 입을 닫았을 때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큰 턱 근육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파충류는 다른 척추동물들보다 더 크고 강력한 턱 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다.


파충류는 발달된 색채 시력과 물을 아끼는 콩팥도 지녔다. 색수용체가 네 개 또는 다섯 개로 사람(세 개 지니고 있다)보다 많다. 아마 파충류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화려한 세상을 보며, 색에 의존해 먹잇감을 더 쉽게 고를 것이다.


파충류의 정의가 변해가고,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멍청하고 게으르며 아둔한 동물로 알고 있던 파충류는 이제 없다. ‘파충류의 시대’ 역시 결코 끝나지 않았다.


박진영 연구원 제공
박진영 연구원 제공

○ 체온이 일정한 변온동물?


놀랍게도 같은 파충류면서 포유류처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녀석들이 있다. 몸집이 큰 파충류다. 대표는 가죽질의 등껍질을 가진 장수거북(사진).

 

미국 퍼듀대의 프랭크 팔라디노 교수팀은 장수거북이 수온이 7.5℃에 불과한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체온을 25.5℃로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비결은 커다란 몸집이다.

 

장수거북은 바다거북의 일종으로 등딱지 길이가 약 2m 정도이며 몸무게는 최대 700kg인 헤비급 파충류다. 몸집이 워낙 크다 보니 외부로부터 받은 열에너지가 몸 안에 축적돼 마치 항온동물처럼 체온을 유지시킨다.

 

이렇게 외온성 변온동물이 몸집으로 체온을 유지시키는 성질을 ‘거대항온성 또는 관성항온성’이라고 한다.
 

 

박진영
국내 유일의 도마뱀 전공 고생물학자이자 파충류 마니아. 공룡이나 도마뱀, 악어 등의 화석이 있는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청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마뱀 화석을 연구했으며, 블로그와 강연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다.
stegosaur@hanmail.net

 

 

 

출처 :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6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