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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식

땀 흘린 뒤 마신 시원한 맥주 맛을 잊을 수 없는 이유

seoulfric 2016. 8. 23. 15:28

[강석기의 과학카페 285] 갈증의 생리학

땀 흘린 뒤 마신 시원한 맥주 맛을 잊을 수 없는 이유

동아사이언스 | 입력 2016년 08월 15일 17:17 | 최종편집 2016년 08월 16일 05:00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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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맥주 한 잔이 성관계보다 더 확실한 쾌락을 준다.
- 마르셀 프루스트

 

술을 잘 못하는 필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주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와인이나 위스키처럼 다른 풍미가 섞여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쓴 희석한 알코올뿐인데 말이다. 숱한 경험을 통해 적당히 취했을 때의 기분 좋은 상태를 예감하기 때문일까. 이런 필자조차 수십 년 전 술 한 모금을 마셨을 때 쾌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 4학년 때 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제주도 졸업여행 일정 가운데 한라산 등반이 있었다. 산이라기보다는 경사가 좀 있는 평지를 걷는 셈이었지만 그래도 워낙 거리가 되다보니 두세 시간 지나서는 꽤 힘들고 목이 말랐다(당시는 페트병 생수가 없었다).

 

중간에 쉴 때 누군가가 캔맥주를 돌렸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 엄청난 쾌감과 함께 갈증이 싹 사라졌다. 요즘도 목마를 때 가끔 캔맥주를 마셔보는데 물론 굉장히 상쾌하지만 그때의 ‘강도’에는 미치지 못해 아쉬워하곤 한다.

 

그런데 그때 필자가 냉장이 안 된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더라도 한 모금에 갈증을 날려버린 그런 상쾌함을 느꼈을까. 시도를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차가운 게 몸에 안 좋다고들 하지만 목마를 때 찬 물과 따뜻한 물이 있으면 십중팔구는 찬 물을 마실 것이다.

 

그런데 갈증의 생리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찬 물이 따뜻한 물보다 갈증해소에 더 나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조성은 똑 같고 다만 열에너지만 조금 덜할 뿐이다. 우리 몸은 땀을 많이 흘리거나 짠 음식을 먹어 체액이 부족해지거나 삼투압이 높아졌을 때 갈증을 느낀다.

 

물을 섭취해야 체액을 보충하고 나트륨 이온 같은 용질을 희석해 삼투압을 낮춰 정상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물을 섭취한 뒤 삼투압의 변화 패턴을 보면 찬 물이나 따뜻한 물 사이에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찬 물을 마셨을 때 갈증이 즉각 해소된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땀 흘린 뒤 마신 시원한 맥주 맛을 잊을 수 없는 이유 - GIB 제공
GIB 제공

● 찬 음료가 갈증해소효과 커

 

2013년 학술지 ‘식욕(Appetite)’에는 ‘차가운 즐거움. 우리는 왜 아이스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좋아할까’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차가운 음료는 따뜻한 음료에 비해 갈증해소효과가 큰데 이는 구강의 냉각수용체가 뇌의 갈증중추에 신호를 보낸 결과라고 한다.

 

즉 뇌는 구강내 차가운 자극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액체, 즉 물이 들어온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 없이 차가운 자극만으로도 갈증이 완화된다는 말인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정말 그렇다. 논문을 보면 병원에서 물을 마실 수 없는 환자들이 갈증을 호소할 경우 얼음 한 조각을 입에 넣어주는데 그 자체로 갈증해소효과가 꽤 된다고 한다(우리나라 병원에서도 이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실험 결과도 비슷해서 하룻밤 물을 안 준 생쥐는 그런 제한이 없는 생쥐에 비해 차가운 금속 막대(물론 물은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다)를 더 열심히 핥는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흥미롭게도 구강에 분포하는 냉각수용체(TRPM8)는 피부에 존재하는 냉각수용체와 동일함에도 그 반응은 꽤 다르다. 즉 서로 역할이 다르다는 말이다. 피부에 있는 냉각수용체의 경우 체온조절이 존재이유다.

 

따라서 지금처럼 더울 때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 들어서면 쾌적함을 느끼지만(체온상승을 막을 수 있으므로) 그 온도 범위는 꽤 좁다. 즉 실내온도가 20도만 되도 5분, 10분이 지나면 추워서 소름이 돋고 팔뚝을 비비게 된다(체온하강을 예감하는 불쾌함).

 

반면 구강 냉각수용체의 존재 이유는 바로 갈증조절이라고 한다. 따라서 얼음물 같은 꽤 차가운 음료를 마시더라도 ‘몸이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겨울에도 갈증이 심할 때는 냉수가 더 댕기는 이유다. 아마도 자연상태에서 물의 온도는 대체로 주위 온도보다 낮기 때문에 입안에 들어온 찬 걸 물로 여기게 진화한 것 같다.

 

결국 냉각수용체는 같지만 이게 뇌의 어디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한라산에서 마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은 필자 뇌의 어디로 가서 그런 잊지 못할 쾌감을 유발한 것일까.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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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시면 바로 갈증이 사라지는 이유

 

학술지 ‘네이처’ 8월 3일자 온라인판에는 이에 대한 답을 포함한 ‘갈증뉴런(thirst neuron)’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생리학과 연구자들은 뇌의 시상하부 뇌활밑기관(subfornical organ)에 존재하는 갈증뉴런이 몸의 수분 상태를 예상해 갈증 반응을 조절함을 밝혔다.

 

즉 필자가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갈증이 가셨다고 느낀 그 당시 몸의 수분 밸런스가 회복된 걸 반영한 게 아니라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라는 걸 예측하고 갈증뉴런이 스위치를 꺼버린 결과라는 말이다. 동물실험을 봐도 목마른 생쥐에게 물을 마음대로 마시게 하면 1분 이내에 갈증뉴런이 잠잠해진다.

 

사람들의 갈증반응이 순전히 몸의 현 상태를 반영하는 건 아니라는 정황증거는 많았다. 갈증을 느낄 때는 몸의 상태를 반영하지만 갈증이 해소됐다고 느낄 때는 꼭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찬 음료가 갈증해소에 더 효과적인 것도 그렇고 얼음을 물고만 있어도 갈증을 덜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혈액보다 나트륨 이온 농도가 더 높은 바닷물조차 마신 순간에는 갈증을 확 덜어준다. 물론 바닷물을 마시면 혈액의 삼투압이 더 높아져 결국에는 갈증이 더 심해진다. 영화에서 난파된 선원들이 바다를 표류할 때 극심한 목마름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선원이 바닷물을 마시려고 할 때 주위에서 말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몸의 갈증이 해소된 시점이 아니라 물을 마실 때, 즉 갈증해소를 예감할 때 꺼지게 설정돼 있는 게 사실 합리적이다. 섭취한 수분이 소화기를 통해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데(수십 분) 갈증뉴런이 혈관의 수분 상태에 반응한다면 목마를 때 물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고 결국 몸은 과잉의 물을 빼내는 노동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이런 합리적인 추론이 맞다는 걸 보여준 실험결과다.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갈증뉴런이 발화되면서 갈증을 느껴 물을 찾게 된다. 그런데 갈증해소에 도움이 안 되는 소금물(왼쪽)을 마시거나 건조한 찬 금속막대를 핥아도(오른쪽)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꺼지며 갈증이 완화된다. 한편 찬물을 마실 경우 같은 양의 따듯한 물보다 갈증해소효과가 더 크다(가운데). 즉 갈증뉴런은 실제 몸의 수분 상태가 아니라 구강에서 오는 감각신호를 바탕으로 갈증해소 여부를 판단한다. - 네이처 제공
몸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갈증뉴런이 발화되면서 갈증을 느껴 물을 찾게 된다. 그런데 갈증해소에 도움이 안 되는 소금물(왼쪽)을 마시거나 건조한 찬 금속막대를 핥아도(오른쪽)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꺼지며 갈증이 완화된다. 한편 찬물을 마실 경우 같은 양의 따듯한 물보다 갈증해소효과가 더 크다(가운데). 즉 갈증뉴런은 실제 몸의 수분 상태가 아니라 구강에서 오는 감각신호를 바탕으로 갈증해소 여부를 판단한다. - 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다양한 갈증해소 예감 조건에서 갈증뉴런의 반응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물통을 보여주기만 할 경우 갈증뉴런의 스위치는 꺼지지 않았다. 즉 목마를 때 그림속의 물은 그림속의 물일뿐 갈증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또 물이 없는 물통을 핥아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소금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금속막대를 핥을 경우 갈증뉴런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즉 구강에서 액체를 느껴야만(차가운 금속막대의 경우 착각이지만) 갈증뉴런이 억제된다. 음료의 온도에 따른 차이도 갈증뉴런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즉 12도인 찬 물을 마실 경우 24도나 36도 물에 비해 갈증뉴런의 활동이 감소하는 폭이 컸다.

 

음식을 먹을 때도 갈증뉴런이 발화한다. 음식이 소화될 때 용질 농도가 증가해 삼투압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밥에 국이나 최소한 찌개, 햄버거에 콜라가(요즘 화제인 쉑쉑버거에 따르면 쉐이커가 최적의 궁합이라고 하지만)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참고로 소금물의 경우 마신 직후에는 갈증뉴런의 스위치가 꺼지지만 1분 정도 지나고 나면 다시 켜진다. 즉 갈증뉴런이 냉각수용체를 통해 물이 들어온다는 신호를 받지만 뒤이어 그냥 물이 아니라는 또 다른 신호를 받는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구강인두나 위에 있는 삼투압 센서가 그냥 물이 아니라 이온 농도가 높은, 따라서 체액 균형회복에 도움이 안 되는 액체를 마셨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광유전학 기술을 써서 갈증뉴런의 스위치를 꺼버리면 체액이 줄거나 삼투압이 높은 생리 상태에서도 갈증을 느끼지 않아 물을 찾지 않았다. 즉 몸이 항상성을 벗어나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문득 나이가 들수록 갈증을 잘 못 느껴 물을 잘 마시지 않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노인들은 하루에 마실 물을 담아놓고 적당히 나눠 마시는 게 좋다고 한다. 아마도 노화로 인해 갈증뉴런의 감도가 떨어진 게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출처 :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13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