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가 전해주는 신경인류학 에세이]

태풍과 인류: 태풍에 대비하는 건강한 마음가짐

 

지진의 공포가 한반도를 사로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태풍 차바입니다. 제 18호 태풍 ‘차바’가 제주도 및 남해안을 휩쓸면서 상당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미 여럿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수많은 가옥과 차량이 침수되었습니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서 건물도 부서지고, 일부 지역은 정전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특히 경주지역은 지진의 피해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태풍이 다시 덮치는 바람이 피해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조속한 피해복구와 함께, 앞으로는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인류세의 시작?


우리는 홀로세(Holocene)을 살고 있습니다. 충적세, 완신세 혹은 현세(現世) 라고도 하는 홀로세는, 약 250만 년 전에 시작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홍적세)가 끝나면서 시작된 지질학적 시대입니다. 1만 년 전에 마지막 빙기가 끝났기 때문에, 그 시기를 기준으로 해서 나눕니다. 종종 우리는 과거의 지구도 지금과 비슷한 기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홀로세는,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지질, 기후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지구가 훨씬 따뜻해졌기 때문에, 해수면이 높아졌습니다. 중간중간 추운 시기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이전보다 온화한 기후였습니다. 인구도 많이 늘어나고, 본격적인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에게는 홀로세가 재앙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덩치가 큰 포유류가 많이 멸종했는데, 기후의 변화 때문인지 혹은 인류 문명 때문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아마 두 가지가 모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머드의 멸종은 기후의 변화, 도도새의 멸종은 인간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세(Anthropocene) 이후 급격히 변화하는 지구의 기후 환경. 지난 1만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으로 유지되다가, 1800년대 이후 이상 기온이 급격이 늘어나고 평균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 - Waters, C.N., 2016 제공
인류세(Anthropocene) 이후 급격히 변화하는 지구의 기후 환경. 지난 1만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으로 유지되다가, 1800년대 이후 이상 기온이 급격이 늘어나고 평균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 - Waters, C.N., 2016 제공

그런데 올해 초 사이언스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실렸습니다. 홀로세가 1만 년 만에 끝나고, 이제 인류는 소위 인류세(Anthropocene)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일으킨 변화가 과거 지질시대의 변화 수준에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방사능 낙진, 종의 멸종 속도 증가, 플라스틱과 콘크리트의 증가, 화석연료와 화학비료의 사용 등이 지구 환경에 확연한 변화를 유발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인류세의 시작과 강력해지는 재난


태풍(Typoon)은 북태평양의 서쪽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을 일컫는 말입니다. 해마다 7월에서 10월경에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등지에 발생하여, 많은 비와 바람으로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대서양이나 태평양 중동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Hurricane)이라고 하고, 인도양이나 태평양 남부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합니다. 호주 부근에서 발생하면 윌리윌리(Willy Willy)라고도 했지만, 요즘은 그냥 사이클론이라고 합니다(원래 윌리윌리는 호주 원주민 말로 사막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바람을 칭합니다).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 위치에 따라서, 각각 이름이 다르지만 그 성질은 비슷합니다. 

 

열대성 저기압 - pixabay 제공
열대성 저기압 - pixabay 제공

사실 태풍의 역사는 아주 깁니다. 서기 49년, 고구려 모본왕 2년 3월에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다는 기록이 처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신라 경주에서 큰 바람이 일어 금성동문이 무너졌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큰 바람이 현재의 태풍과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인류는 과거에도 태풍을 겪어왔고, 또 극복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인류세의 시작과 더불어, 점차 태풍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엘니뇨와 라니냐 현상이 점점 큰 강도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기후의 변화는 아주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간단하게 무엇이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 연방 재난 관리국(Federal Emergency Agency)에 의하면, 1953년부터 83년까지 30년 동안, 해마다 평균 26.65 건의 재난이 있었던 반면, 최근 29년 동안에는 평균 91.4건의 재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거의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미항공우주국(NASA)에 의하면, 지구온난화가 평균기온을 높일 뿐만 아니라, 날씨와 관련된 자연 재난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태풍 차바가 한국에 상륙하기 며칠 전, 강력한 태풍 메기가 대만에 상륙해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호주 퀸즈랜드와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에는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엄창난 폭우가 쏟아져서 여러 명이 실종되고, 넓은 지역이 침수되거나 정전의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모두 전례가 드문 일이었습니다.

 

 

태풍과 인류: 태풍에 대비하는 건강한 마음가짐 - 기상청, 포커스뉴스 제공
태풍과 인류: 태풍에 대비하는 건강한 마음가짐 - 기상청, 포커스뉴스 제공

태풍을 대비하는 마음가짐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가 다시 태풍과 같은 형태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당연한 인과응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지구온난화를 되돌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적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등, 갈수록 심해지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그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점점 심해지는 태풍이나 폭우를 미리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는 짧은 시간에 급격한 환경 변화를 유발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홍수나 강력한 바람 등으로, 신체적 피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신체의 안전을 최우선을 신경 써야 합니다. 신체적 안전이 확보된 후에는, 2차적인 심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합니다.


특히 일반적인 폭우나 홍수와 달리, 태풍은 아주 독특한 심리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지역주민이 경험하는 고조된 불안과 심리적 갈등은 다른 재난에 비해서 단시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특징을 보입니다. 두려움은 지역사회 내로 급격히 전파되고, 태풍이 예상되는 지역의 주민은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하거나 혹은 필요한 물자를 사재기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위험지역으로부터의 자발적 혹은 강제적 소개는 가족과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를 붕괴시키기도 합니다. 가옥의 파괴 및 지역 경제기반의 손상, 학교의 폐쇄 등은 다양한 이차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태풍이 다가오면 일단 다음과 같은 점을 신경써서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 일단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 대개 태풍은 며칠 전에 대략의 진행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습니다. 이동수단을 확보하고, 필요하면 다른 지역의 친척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 정확한 정보를 수집한다.
√ 정확한 정보를 얻으면, 불안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상청의 예보를 잘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중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피해상황이나 자극적인 보도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연락을 유지한다.
√ 가족이나 친지, 친구와 연락을 유지합니다.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하고, 긴밀한 연락망을 유지합니다.
○ 건강한 습관을 지킨다.
 √ 적절한 식사와 운동, 휴식으로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합니다. 신체적 상태는 당신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태풍으로 인한 불확실한 상황에 최적으로 대처하려면, 최상의 신체적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 어린 아이들이 자극적인 보도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도하고, 안심시켜 줍니다. 가능한 평소에 하던 공부와 놀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 희망을 가진다.
 √ 정부에서 발표하는 공식적인 지침과 서비스를 잘 확인하고, 문제 없이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도록 합니다.

 


태풍 이후, 건강한 마음을 지키는 방법


태풍 및 그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는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다음과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분명 재난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희생자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충분히 애도한다.
√  가족을 잃었거나 소중한 재산을 잃었다면, 견딜 수 없이 강력한 감정에 휩싸일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
○ 뉴스시청을 자제한다.
√  종종 방송매체에서는 가장 최악의 상황과 사건을 반복적으로 보도합니다. 이는 당신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재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 도움을 청한다.
√  가능하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도 재난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적절한 도움과 위로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
√  가족, 친한 친구를 찾아서 당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합니다. 정 어려우면 일기를 쓰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형태의 자기 표현은, 상당한 위로효과가 있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모이는 지역 내 지지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좋습니다. SNS를 이용한다면, 페이스북 등으로 자신의 처지와 감정,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로와 지지를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한다.
√  잘 먹고, 충분히 마시고,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합니다. 종종 불안감으로 인해서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데, 이완요법 등으로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알코올과 처방이 없는 약물사용은 가능한 줄입니다.
○ 일상으로 복귀한다.
√  가능한 기존의 규칙적인 하루 일과에 따라서 생활하도록 합니다. 직장일이나 집안일 뿐만 아니라, 취미 생활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 아주 중요한 결정이라면, 잠시 미룬다.
√  이직이나 이사를 하는 등의 아주 중요한 결정은, 잠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소아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관심


어린 아이나 청소년은 강력한 불안정감, 불공정하다는 느낌, 공포, 분노, 슬픔, 절망, 미래에 대한 걱정, 다시 태풍이 올 것 같은 두려움 등에 사로잡히고는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태풍이나 홍수의 원인으로, 자신이 죄를 지어서 그렇다든가 혹은 어떤 동화 속의 존재가 공격하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짜증과 분노, 칭얼대기, 부산한 행동 등 다양한 행동상의 변화를 유발합니다. 종종 부모와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분리 불안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만나기 꺼리거나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고, 불면과 식욕저하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복통이나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 불안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적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은 삶의 유한성과 같은 존재론적 불안에 휩싸이고, 사회적 고립이나 짜증, 분노, 위험한 행동, 부모나 선생님과 같은 권위상에 대한 반항을 보이기도 합니다.


○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
√  힘든 시기에는 어른에게 의존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줍니다. 평소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토닥거려 줍니다. 신체적인 위안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긴장을 풀고, 같이 놀아줍니다.
√  특히 그림과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질문을 하도록 격려하고, 적절하게 대답해줍니다.
√  청소년들에게는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해줍니다. 정확하고 친절한 설명을 통해서, 트라우마에 대한 혼란과 불안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친절하게 설명해서 안심시켜주고 불안과 걱정을 이해하도록 합니다. 
○ 일상적인 일과를 유지하도록 한다.
√  평소와 비슷하게 식사, 놀이, 공부, 수면에 관한 일정을 지키도록 합니다. 구호소에 있거나 친척집에 머무르는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통제감을 부여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도울 수 있도록 격려해줍니다. 
○ 뉴스 시청을 제한합니다.
√  뉴스에서 나오는 트라우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통제합니다.

 


※ 참고문헌
임현석, 임재현(2016), 이례적 ‘10월 태풍’… 400mm 물폭탄, 동아닷컴

Jeffery Kluger(2014), The sixth great extinction is underway- and we’re to blame, Time

Waters, C.N.(2016), The anthropocene is functionally and stratigraphically distinct from the Holocene, Science 351 (6269).
Richard Mattews(2013), Extreme Weather and Existential Reflections on Life in the Anthropocene

재난과 정신건강 = Disaster and mental health, 재난정신건강위원회, 학지사, 2015
Raymond F. Hanbury, Tips to strengthen your emotional well-being before the arrival of a hurricane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parkhanson@gmail.com

출처 :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1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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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fr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