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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식

달콤한 소주 전성시대

seoulfric 2015. 7. 30. 10:13

달콤한 소주 전성시대

 

요즘 주점에서는 인생의 애환을 달래는 “캬~” 소리를 듣기 어렵다. 대신 “맛있다”는 감탄사 천지다. 달콤한 과일 소주가 주류 시장을 휩쓸었기 때문. 유행을 선도한 유자맛 소주는 출시 100일 만에 4000만 병이 팔려 나갔다. 전국민이 과일 소주의 매력에 풍덩 빠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 번 마셔보고 판단해 보세요.” 길쭉한 유리병 두 개에는 각각 투명한 액체와 반투명한 자주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쌀로 직접 빚은 소주라고 했다. 슬쩍 시계를 봤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눈 딱 감고 한 모금을 꿀떡 삼켰다. 투명한 소주를 마시자 “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반면 자주색 소주는 “음~” 좀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다.

 

“자주색 소주가 더 순한 건가 보죠? 알코올 특유의 향이나 쓴맛이 덜하네요.” 강희윤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식품개발팀 박사가 웃으며 말했다. “알코올 도수는 똑같이 30도입니다. 다만 자주색 소주에는 고구마 성분과 자일리톨이 첨가됐어요. 어때요, 단맛이 첨가되니까 목 넘김이 훨씬 부드럽죠?” 

 

 

최근 유행하는 과일 소주는 과일맛과 향을 첨가해 알코올 향미를 줄였다. 목넘김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 롯데주류 제공
최근 유행하는 과일 소주는 과일맛과 향을 첨가해 알코올 향미를 줄였다. 목넘김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 롯데주류 제공

● 과일 맛이 알코올 맛을 가린다

 

김광옥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팀은 2008년 7가지 소주의 맛을 평가하고 ‘시판 소주 제품들의 관능적 특성 및 소비자 기호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도수가 높은 S소주가 도수가 낮은 소주보다 오히려 알코올 맛과 향이 덜 느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도수가 높은) S소주는 인공적인 과일 향과 단맛이 다른 시료에 비해 높게 평가됐다”며 “상대적으로 알코올 맛과 향이 약하게 느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일 향과 단맛이 알코올의 쓴맛과 톡 쏘는 느낌을 줄인다는 얘기다. 이를 ‘마스킹 효과’라고 부른다.

 

마스킹 효과는 어떤 감각이 다른 감각을 지워버리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카페에서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하다 보면 주변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청각뿐만이 아니다. 후각, 시각, 그리고 미각에서도 마스킹 효과가 일어난다.

 

강 박사는 “짜고 매운 보쌈 김치에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드는 것도 같은 이치”라며 “인간의 혀는 잘 속는 편이라 같은 소주라도 단맛을 첨가하면 마시기 편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시판 소주의 단맛은 소주를 보다 잘 삼키게끔 제조사에서 첨가하는 감미료 맛이다. 인공적인 과일 향은 알코올을 발효할 때 생기는 에틸 아세테이트, 에틸 숙시네이트 등에서 비롯된다.

 

시판 소주와 달리, 과일 소주는 다양한 과일즙을 첨가한다. 이런 과일 소주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10~20여 년 전에도 대학가에 과일 소주 열풍이 불었다. 다만 그 때의 과일 소주는 기업에서 생산하는 게 아니라 각 주점이 소주에 과일을 담가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요즘 시판되고 있는 과일 소주는 직접 만든 것보다 뒷맛이 깔끔하고 과일의 단맛과 향이 더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의 열풍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유자맛 소주를 개발한 조판기 롯데주류 상품개발팀장은 “알코올과 과즙 사이에 과학적인 상관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소주에는 알코올 이외에도 다양한 첨가물들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둘만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건 의미가 없죠.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맛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입니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 20종류 이상의 과실주를 시음하고 선별했습니다. 제품 개발이 한창일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안에서 유자 향이 가신 적이 없을 정도였어요.”

 

이런 방법을 식품공학에서는 ‘관능평가’라고 한다. 동일한 식품, 동일한 성분이라도 사람마다 미각을 느끼는 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성분을 토대로 맛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잘 훈련된 검사원들이 직접 먹어보고 맛, 냄새, 식감 등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한다. “알코올과 과즙의 어떤 성분이 서로 시너지를 낸 거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기자에게 강 박사가 “일단 마셔보라”며 아침부터 소주를 권한 이유다. 

 

  - GIB 제공
GIB 제공

● 과일 소주는 왜 투명할까

 

취재를 한창 하고 있는 도중에 시판 중인 과일 소주를 한 번도 마셔보지 않았다는 지인에게서 이런 질문을 들었다. “그럼 그 유자 소주는 노란색이야?”

 

대부분 과일에는 플라보노이드, 안토시아닌, 탄닌 계 색소가 들어 있다. 과일즙을 넣었다면 소주도 색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이런 색소는 열을 받거나 산을 만나면 폴리페놀 화합물이 생성돼 색깔이 변한다.

 

배나 사과를 깎아놓고 공기 중에 놓아 두면 갈변하는 현상이 그 예다. 강 박사는 “식품은 살균을 위해 마지막에 반드시 열처리를 하기 때문에 생과즙을 첨가하면 색이 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시판 중인 과일 소주는 전부 투명하다. 비결은 뭘까.

 

답은 제균필터에 있다. 열처리로 살균하는 대신 미세한 필터에 걸러 미생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비결은 청징농축액이다. 천연과즙을 제조하는 데는 즙을 짜거나 여과하는 방법, 그리고 청징법 등이 있다. 이중 청징법은 과즙을 탁하게 하는 물질을 제거해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수용성 단백질을 응고해 침전시키고 분해효소로 전분이나 섬유질 등을 제거한다. 청징농축액은 이렇게 만든 과즙에 고형으로 만든 과일과 향이 나는 합성착향료를 섞은 것이다. 조판기 팀장은 “제품을 처음 개발할 때부터 소주처럼 맑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색이 나는 과즙 대신 투명한 청징농축액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혹시 이런 첨가물 때문에 일반 소주보다 숙취가 더 심하지는 않을까. 답은 “아니오”다. 강 박사는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숙취를 유발하는 것”이라며 “양주가 깔끔한 건 독해서 많이 못 먹어서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일 소주가 달콤하다고 정신 놓고 먹다가는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언제나 술은 적당히 즐기는 게 중요하다.

 

  -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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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소주 제대로 즐기기

 

- 가장 맛있는 온도?

 

하이트진로가 2012년 펴낸 주류상식 가이드에 따르면, 소주는 두 번째 잔이 가장 맛있는 온도라고. 소주는 대부분 차게 해서 마시지만, 너무 차게 하면 혀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소주의 맛을 음미하기 어렵다.

 

8~10℃가 적당한데, 냉장고에서 4~5℃로 냉장된 소주를 꺼내서 잔에 따라 마실 때, 두 번째 잔 온도가 딱 이 정도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하이트진로는 블로그를 통해 자사의 과일 소주를 얼음이나 탄산수와 함께 마시면 더 좋다고 전했다. 뭐, 정도(定道)가 있으랴! 본인 입맛에 맞으면 된다. 참고로, 과일의 향과 단맛을 즐기기에는 10℃ 내외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어울리는 안주는?

 

과일 소주도 어쨌든 소주다. 소주에 맞는 안주를 먹으면 된다. 배는 이뇨작용을 통해 소변으로 알코올이 빠져나가는 것을 돕는다. 오이는 비타민C가 풍부해 숙취 해소에 좋다고. 간이 알코올을 분해할 때 비타민C가 많이 쓰인다. 소주를 마실 때 흔히 맵고 짠 찌개를 먹는데, 알코올과 함께 식도와 위를 자극해 좋지 않다. 특히! 삼겹살은 피해야 한다. 알코올은 지방을 합성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삼겹살까지 더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 내 적정 주량은?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주량 바로 알기다. 달콤한 과일 소주는 정신 놓고 마시기 딱 좋다. 조심하지 않으면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지니, 옷 다 입고 샤워하고 싶지 않으면 자신의 평소 주량에 맞춰 과일 소주는 몇 병까지 마셔도 되는지 알아두자. 우선 술의 도수와 양을 곱해 알코올 양을 계산해 보자.

 

알코올의 비중이 0.8이므로 알코올 용량(부피)에 0.8을 곱해 무게로 환산한다. 가령, 평소 주량이 알코올 도수가 13도인 와인 한 병이라면 당신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알코올은 13/100 x 700(cc) x 0.8(g/cc) x 1병= 72.8g이다. 이를 알코올 도수 14도인 과일소주로 환산하면 몇 병일까? x 360(cc) x 0.8(g/cc) x x병 = 72.8g 이를 거꾸로 계산해 보면 x는 약 1.8병이 나온다.

 

한 병 하고도 6잔이란 얘기다. 굳이 섭취한 알코올을 무게로 계산하는 건, 다양한 연구 결과가 알코올 무게를 기준으로 어떤 병에 걸릴 위험도를 추정하기 때문이다. 가령, 알코올을 매일 150g씩 10년 이상 먹으면 대부분 간경화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pixabay.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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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우아영 기자 wooyoo@donga.com

출처 :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7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