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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식

1953년 스탠리 밀러의 초기 지구 조건에서 아미노산 합성 실험

seoulfric 2015. 9. 21. 11:52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㉓]

1953년 스탠리 밀러의 초기 지구 조건에서 아미노산 합성 실험

 

During the run the water in the fl ask became noticeably pink after the fi rst day, and by the end of the week the solution was deep red and turbid.

 

장치가 작동하고 하루가 지나자 플라스크 안의 물이 눈에 띠게 분홍색이 됐고 1주일이 지나가 짙은 붉은색의 탁한 용액이 됐다.

 

 

19세기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뿌리째 흔든 책 ‘종의 기원’을 출판하면서도 기독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생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하는 질문에 “창조자가 몇 가지 또는 한 가지 형태의 생명체를 만들었고 이처럼 단순한 출발점에서 아름답고 놀라운 무수한 형태가 진화했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적인 편지에서 “따뜻한 작은 연못에서 암모니아와 인산염, 빛, 열, 전기 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생명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즉 화학적 조성에서 생물체가 창조됐다.

 

훗날 ‘따뜻한 작은 연못 가설(warm little pond hypothesis)’로 불리게 된 다윈의 생각은 20세기 들어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줬다. 1920년대 러시아의 과학자 알렉산더 오파린은 다윈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종속영양 가설(heterotrophic hypothesis)’를 발표했다.

 

즉 최초의 생명체는 주위의 유기물질을 이용해 살아가는 단순한 생명체였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초기 지구에 유기물질이 풍부하게 존재하려면 대기는 지금처럼 산화성이 아니라 환원성이었다고 가정했다. 산화성 대기, 즉 산소가 풍부한 조건에서는 유기 물질이 쉽게 분해되기 때문이다.

 

 

1953년 논문에 발표된 유명한 실험이 행해진 실험실에서 당시 대학원생이던 스탠리 밀러가 포즈를 취했다. - 시카고대, 사이언스 제공
1953년 논문에 발표된 유명한 실험이 행해진 실험실에서 당시 대학원생이던 스탠리 밀러가 포즈를 취했다. - 시카고대, 사이언스 제공

● 다윈의 ‘따뜻한 작은 연못 가설’

 

1930년 미국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스탠리 밀러는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서 화학을 공부한 뒤 1951년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지도교수는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를 발견해 193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화학자 헤럴드 유리 교수였다. 밀러는 유리 교수의 실험실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그해 10월 유리 교수의 한 강연을 듣는다.

 

이 강연에서 유리 교수는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가 만들어지려면 지구가 환원성 대기여야 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당시 유리 교수는 오파린의 가설을 모르는 상태였다. 강의가 끝난 뒤 밀러는 유리 교수를 찾아갔다.

 

 

“제가 그 실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21살짜리 신입 대학원생의 당돌한 제의에 유리 교수는 당황했다.

 

“이건 상당히 위험한 실험이고 아마도 성공하지 못할 텐데. 난 자네를 3년쯤 뒤에 졸업시킬 의무도 있고.”

 

그러나 밀러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도를 해보고 안 되면 실험을 접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혼자 실험을 시작한 밀러는 불과 몇 주 만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밀러는 유리 기구를 교묘하게 배치해 원시 지구의 대기를 재현했다. 즉 대기를 이루는 물질로는 현재의 조성인 질소와 산소 대신 메탄, 암모니아, 수소를 넣었다. 그리고 화학반응의 촉매 역할을 했을 번개를 재현하기 위해 전기스파크를 일으키는 장치를 플라스크 안에 설치했다.

 

한편 바다(또는 연못)를 재현하기 위해 아래쪽 플라스크에 물을 담았고 열을 가해(시간을 가속시키기 위해) 물을 증발시켰다. 즉 아래 플라스크에서 데워진 물이 증발해 메탄, 암모니아 등으로 이뤄진 대기(위 플라스크)로 들어간 뒤 전기 스파크(번개)가 나면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만들어진 물질을 포함한 수증기는 플라스크 아래의 관을 통해 냉각돼 다시 아래쪽 물이 잠긴 플라스크로 떨어진다. 전기스파크 장치만 빼면 고등학교 화학 실험 수준의 장비인 셈이다.

 

그러나 실험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러는 이 속에서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래쪽 플라스크의 물 색깔이 하루만에 핑크색으로 바뀌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져 일주일 뒤에는 짙은 붉은색의 탁한 용액이 됐기 때문이다.

 

밀러는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을 종이크로마토그래피로 분리했다. 종이크로마토그래피란 혼합물을 분리하는 데 쓰는 방법으로 종이의 한 지점에 혼합물 용액을 찍은 뒤 종이의 아랫부분을 적당한 용매에 담궈 용액이 종이를 따라 올라 가면서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각 물질의 이동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혼합물을 좀 더 확실히 분리하려면 종이를 90° 돌려 다른 조성의 용매로 다시 한번 분리한다. 즉 2차원 종이크로마토그래피다. 결과는 놀라웠다. 종이 위에 분리된 화합물들을 분석한 결과 단백질을 이루는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이 여럿 발견됐기 때문이다. 즉 글리신, 알라닌, 아스파르트산 같은 아미노산이 상당량 만들어졌다. 이 같은 생체분자가 이런 단순한 장치에서 만들어졌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러스트│최은경 제공
일러스트│최은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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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명 대학원생에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밀러의 실험 결과에 깜짝 놀란 유리 교수는 데이터를 정리해 빨리 논문을 쓰라고 재촉했고 밀러는 불과 2쪽짜리 분량의 논문을 완성해 저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제출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논문에 유리 교수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 보통 같으면 제1저자(주로 실험을 한 사람)에 스탠리 밀러, 교신저자(실험의 책임자로 주로 지도교수)로 헤럴드 유리의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아마도 유리 교수가 명예욕이 없는 사람이거나 노벨상 수상으로 모든 걸 이뤘기 때문이 아닐까.

 

밀러는 훗날 자신이 유리 교수의 학생이 아니었으면 이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리지 못했을 거라고 회상했다. 사실 논문이 1953년 5월 15일자에 실린 이유도 논문의 검토를 맡은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실험 결과를 믿지 못해 시간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밀러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논문이 나가자 과학계에는 큰 논란이 일었지만 재현하기가 워낙 쉬운 실험이었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밀러는 ‘생명의 기원’을 밝힌 과학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 실험실로 밀러를 찾아가 실험복을 입은 채 장치를 설명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다면 메탄이나 암모니아에서 어떻게 글리신 같은 아미노산이 만들어질까. 훗날 반응메커니즘을 규명한 결과 먼저 포름알데히드와 시안화수소 같은 간단한 화합물이 만들어진 뒤 아미노니트릴이라는 분자를 거쳐 글리신이 만들어졌다.

 

그 뒤 밀러와 유리 교수는 조건을 바꿔가며 여러 실험을 했고 아미노산을 비롯한 다양한 생체분자를 얻었다. 밀러는 1954년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거쳐 1960년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에 자리잡았다.

 

 

이미지 출처│DOE 제공
이미지 출처│DO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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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치슨 운석 조성 놀랍도록 비슷해

 

1961년 미국 휴스턴대에 있던 스페인 태생의 생화학자 후안 오로 교수는 아미노산이 밀러의 실험보다 더 단순한 조건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즉 물에 알데히드는 넣지 않고 시안화수소와 암모니아만을 넣은 상태에서 반응을 시켰다.

 

그 결과 여기서도 아미노산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DNA나 RNA 같은 핵산의 염기인 아데닌도 합성됐다. 그 뒤 조건을 바꿔가며 진행된 실험에서 나머지 염기인 구아닌, 시토신, 티민도 발견됐다. 중요한 생체분자 대부분을 단순한 화학반응으로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결과는 오늘날 생명체의 기원이 이들 화합물의 조합(구체적으로 어떤 식인지는 모르지만)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1969년 호주 빅토리아주 머치슨에 떨어진 무게 100kg짜리 대형 운석은 1953년 밀러의 실험을 다시 부각시켰다.

 

‘머치슨 운석(Muchison meteorite)’이라고 불리는 이 탄소질 콘드라이트(주로 각섬석과 휘석으로 된 콘드룰로 이뤄진 운석)는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암석이다.

 

그런데 머치슨 운석에 포함된 유기분자의 조성을 분석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다양한 아미노산이 발견됐을 뿐 아니라 그 조성과 함량비율이 1953년 밀러의 실험 결과와 상당히 비슷했던 것. 사실 밀러의 실험이 인정된 이후에도 이는 인위적인 실험일 뿐 과거 지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천체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자연상태에서 정말 아미노산 여러 종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1953년 밀러의 실험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해소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생명체가 어떻게 물질로부터 등장했는지를 모르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이론인 ‘RNA 세계 가설’, 즉 ‘정보도 저장하고 화학반응도 촉매할 수 있는 RNA 분자가 원시 생명체의 출발점’이라는 가설 역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밀러 교수는 지난 2007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제자이자 오랜 동료였던 제프리 바다 교수는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1950년대 실험에서 얻은 물질이 들어있는 바이알(작은 유리병)이 담긴 박스를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최신 분석장비로 이 물질의 조성을 분석해 당시 밀러가 확인했던 것보다 더 많은 유기분자(아미노산 22종과 아민 5종)가 들어있음을 확인해 2008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밀러의 실험이 50년도 더 지난 뒤에 좀 더 정밀하게 검증된 셈이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을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2008-2012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논문에 발표된 생명과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과학동아 2011년 10월호

출처 :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8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