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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식

장님 코끼리 만지기 : 뇌와 의식을 이해하려는 노력들

seoulfric 2014. 10. 8. 14:09

"우리가 두뇌를 이해할만큼 두뇌가 단순했다면, 우리는 너무 단순해서 두뇌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생물학자인 라이얼 왓슨이 남긴 말이다. 왓슨은 뉴에이지에 경도된 면이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은 뇌가 얼마나 복잡한 기관인지 보여준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을 모르는 이유도, 문명이 태동한 이래 글 좀 쓰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엄청난 양의 전문적인 고찰을 쏟아냈음에도 여전히 남녀관계가 어려운 이유도, 분명 내가 한 행동인데 왜 이런 일을 했을까 후회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서로 얽혀 주고받는 신호들이 말도 못하게 복잡한 탓이다. 당연히 많은 과학자들이 뇌를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여기고 연구에 뛰어들었다. 특히 대뇌는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였다. 인간의 의식 활동을 담당하는 기관인 만큼 자아와 무의식 같은 정신의학의 난제뿐 아니라 영혼이나 신앙과 같은 종교적 논쟁과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지는 것만으로 코끼리의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을까?
 
▲ 골상학자들이 정리한 뇌의 영역별 기능. 골상학자들은 대뇌의 부위별로 어떠한 욕구와 감정을 담당하는지 정리했다. 근거도 빈약하고 전제도 틀린데다 비윤리적이기까지 했지만 골상학의 아이디어는 후대의 신경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골상학자들이 정리한 뇌의 영역별 기능. 골상학자들은 대뇌의 부위별로 어떠한 욕구와 감정을 담당하는지 정리했다. 근거도 빈약하고 전제도 틀린데다 비윤리적이기까지 했지만 골상학의 아이디어는 후대의 신경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뇌가 의식활동의 중추일 뿐 아니라 영역별로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졌다. 현대적인 대뇌 연구는 놀랍게도 '유사과학'에서 출발했다. 대뇌의 기능이 영역별로 다를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18~19세기에 걸쳐 활동했던 독일의 해부학자이자 골상학자인 프란츠 요제프 갈이 최초로 제시했다. 골상학이란 두개골의 골격과 모양으로 지적인 능력을 비롯한 선천적인 요소들을 추론하는 학문으로 '서양식 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골상학은 틀린 전제를 두긴 했지만 경험칙에 의거하기보다 나름의 논리와 이론체계를 갖춘 학문이었으며,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갈을 비롯한 골상학자들은 비유럽인들의 두개골은 그들에게 도덕성과 이성이 발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이 때문에 문명화된 유럽인들이 이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골상학은 20세기 초까지 맹위를 떨치다 근거도 빈약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발전하여 과학계에서 사장된다. 그러나 뇌의 부위별로 역할이 다르다는 이론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이 피에르 폴 브로카다. 브로카는 운동성 실어증 환자의 뇌를 부검하여 좌뇌 전두엽 하단이 크게 손상됐음을 발견했다. 이를 근거로 브로카는 이 부분이 언어를 관장하는 부위라 추측했다.
 
해부를 통해 언어중추의 위치를 알아낸 브로카와 달리 독일의 구스타프 테오도르 프리치와 에두아르드 히트지히는 개의 대뇌 피질에 전기 자극을 가해 운동중추를 알아냈다. 프리치와 히트지히의 연구는 브로카에 비해 진일보한 방법이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뇌를 자극함으로써 특정 질환과 대뇌 특정 영역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그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폴 브로카는 근대적 뇌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해부를 통해 언어중추의 위치를 규명하였으며, 그의 업적은 대뇌의 언어중추의 이름인
폴 브로카는 근대적 뇌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해부를 통해 언어중추의 위치를 규명하였으며, 그의 업적은 대뇌의 언어중추의 이름인 '브로카 영역'에 남아 있다. 브로카의 연구는 후대의 언어학자들이 구조주의적인 관점을 취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곧 많은 학자들이 대뇌를 직접 자극하는 방법을 받아들였다. 얄궂게도 20세기 초반에 빈번했던 전쟁이 뇌 연구가 발전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두개골이 손상된 환자들을 수술하면서 대뇌 손상에 따른 증상들에 대한 임상 자료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술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뇌 수술 중에 집도의가 환자의 뇌를 직접 자극하여 자세한 데이터를 얻는 일도 빈번했다. 현재 알려진 대뇌의 각 영역과 뇌파에 대한 정보들은 거의 모두 20세기 초반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다.
 
20세기 전반부까지 뇌 연구가 급물살을 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기능별로 대뇌의 영역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아직 정확한 영역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 영역도 상대적인 위치일 뿐, 개인차가 큰 편이라 '대충 이 곳이 이런 역할을 한다'는 정도의 모호한 정보만 제공할 뿐이었다. 이는 20세기 초까지의 뇌 연구가 대뇌 여러 곳을 직접 자극하고 이를 기록하여 지도를 만드는 수준에 그쳤던 탓이다. 이 방법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눈으로 보지 않고 아무리 코끼리를 만져봐야 어디까지가 다리고 어디부터가 코인지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어렵다. 게다가 손으로 만져보는 회수에 제한이 있다면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
 
뇌에 대한 지식이 치밀하지 못하다보니 때로는 재앙을 낳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뇌엽절제술'이다. 뇌엽절제술은 독일의 고트리프 부르크하르트가 1890년에 고안한 시술로 심각한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법으로 개발됐다. 당시 뇌엽절제술은 성공률이 50%에 불과한데다 환자가 석연치 않게 사망하는 경우가 경우가 많아 곧 잊혀지고 만다. 그러던 것을 1935년, 포르투갈의 안토니오 에가시 무니스가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뇌엽절제술 중에서도 전두엽절제술은 도저히 치료법을 찾을 수 없던 중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치료에도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증상의 환자들이 전두엽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처럼 얌전해졌기 때문이다.
 
전두엽절제술을 묘사한 당시의 삽화. 눈꺼풀을 들추고 송곳을 찔러넣어 전두엽을 파괴하는 과격한 방법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제법 각광받는 치료법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누이인 로즈마리 케네디와 1940년대를 주름잡은 배우, 프랜시스 파머와 같은 유명인사들도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전두엽절제술을 묘사한 당시의 삽화. 눈꺼풀을 들추고 송곳을 찔러넣어 전두엽을 파괴하는 과격한 방법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제법 각광받는 치료법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누이인 로즈마리 케네디와 1940년대를 주름잡은 배우, 프랜시스 파머와 같은 유명인사들도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무니스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49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전두엽절제술은 1960년대까지 수십 만 명의 환자들에게 시술됐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들은 '겉보기'에 불과했다. 뇌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지 못했던 탓이다. 무니스는 뇌의 전두엽이 공격성과 망상과 관련이 있어 이 부분을 제거하면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전두엽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 전반을 제어하는 부위다. 전두엽을 제거하면 당연히 자아를 잃고 폐인이 되기 마련이니 공격성이나 과잉 행동을 나타낼 리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뇌엽절제술로 전두엽을 제거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거나 주변의 일에 아무런 감정이 없어 마치 '영혼을 잃은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두엽절제술은 불완전한 이해가 임상에 적용됐을 때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남아, 1970년대 이후 무분별한 시술이 전면 금지됐다. 뇌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깨달은 후에야 임상정신의학의 주도권은 외과적 시술에서 약물치료로 넘어갔다.
 

손에도 눈을 달다
 
fMRI는 살아있는 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fMRI가 개발된 이후 뇌 연구는 급속도로 진척됐다. - NIMH 제공
fMRI는 살아있는 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fMRI가 개발된 이후 뇌 연구는 급속도로 진척됐다. - NIMH 제공
그러나 1990년대부터 뇌과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물리학과 화학의 발달로 자기공명화상장치와 뇌 자계 측정기술이 개발되어 메스를 대지 않고도 뇌의 활동을 분석하는 방법이 열린 것이다. 연구자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피험체의 두개골을 열고 전극을 꽂아 넣을 필요가 없었다. 사람에게도 뇌 수줄 중에 어쩌다 한 번 실험해 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약간의 전극과 사진만으로도 안전하게 자세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현재 '뇌의 밖에서 뇌를 연구하는' 방법들로는 fMRI(기능자기공명영상)와 PET(양전자방출단층사진)이 대표적이다. 특히 fMRI는 20여년 사이에 뇌 연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fMRI 기술이 개발된 후, 뇌에 대해 20여년 사이에 그 이전의 인류 역사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fMRI는 혈관 내 산소 농도에 따라 MRI 영상에 미세한 변화가 발생한다는 점을 이용한 방법이다.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될 때 해당 부위에 대량의 산소가 필요한데, 이를 측정한다. 최근에는 뇌파 측정 기술을 결합하여 뇌 활동을 1000분의 1초 단위로 끊어서 관찰함으로써 '동영상'을 촬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PET와 fMRI가 커다란 지도를 그리는 방법인 반면 세세한 골목길을 그리는 방법도 있다. 형광단백질을 이용하여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부인 시냅스를 추적하는 기술이다. 이를 이용하면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망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수 있어 뇌 지도의 세부를 재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뇌를 구석구석 뜯어볼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지만 고전적인 방식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임상에서는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보니 단순히 지도만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이전처럼 막연한 방법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생리화학적 방법론과 정밀제어기술이 결합하여 질환을 유발하는 부분만 정확하게 집어내어 시술이 가능해졌다.
 
광유전학은 이름 그대로 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자 조작된 신경세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광유전학은 자극과 행동 관계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신경계를 미세하게 직접 조정함으로써 난치성 신경계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KAIST 제공
광유전학은 이름 그대로 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자 조작된 신경세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광유전학은 자극과 행동 관계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신경계를 미세하게 직접 조정함으로써 난치성 신경계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KAIST 제공
정신질환의 실제 '증상'에 해당하는 개체의 행동은 뇌 지도만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뇌 지도는 대강의 예측은 가능하게 하지만 뇌의 네트워크가 워낙 복잡한데다 신경세포간 상호작용도 빈번하다보니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주목받는 분야가 '광유전학'이다. 이름 그대로 빛을 이용하여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적으로 조작된 피험체에 광전극을 이식하여 미세한 변화에 따른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찰한다. 전기자극을 이용하는 기존의 방법은 의도치 않은 장소의 세포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아 변인통제가 어려운 편이었는데 빛을 이용하면 이러한 영향을 최소화하여 자극과 행동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알 수 있다.
 
빛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는 임상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손상된 망막세포를 대체하여 인공망막을 이식할 수도 있으며 신경세포 손상으로 운동기능을 상실한 환자들의 근육에 이식하면 빛 자극을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뇌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들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각화'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을 찾거나 가게를 세우기에 적당한 위치를 알아보려면 지도를 펼쳐야 한다. 일단 눈으로 보아야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조건에 따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연구방법들은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던 뇌의 속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과학자들은 손으로만 간신히 더듬어보던 때에 비해 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해 6월, '네이처 메소드'는 뇌지도화(브레인 매핑) 특집호를 냈다. 특집호의 사설은 이렇게 한숨 섞인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경이로운 신체 기관인 뇌를 열심히 연구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놀라고 있다. 뇌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말이다." 과학자들은 눈으로 보고 나서야 우리의 뇌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깨달았다. 지금 우리가 지닌 연구방법론의 수준에 비교했을 때 뇌의 복잡함과 정교함에 압도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코끼리를 더듬던 손에 눈을 달기는 했지만 아직 머리의 눈이 열리지는 않은 셈이다. 하지만 탐험은 늘 그런 막막함 속에서 다시 시작됐다. 미지의 뇌가 눈 앞에서 비밀을 벗는 순간도 그런 탐험 속에서 다가올 것이다.

 

출처 : 동아사이언스